고려대학교 정보
호랑이가 상징적인 동물이다. 1905년 5월 5일 보성전문학교로 개교했습니다. 이용익이 설립했다.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는 김성수가 설립했다. 서울과 세종캠퍼스를 가지고있다. 학부생은 2021년 기준으로 2만명, 대학원생은 9500명이다. 교원은 4273명이다. 815 광복 후 보성전문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46년 보성전문학교의 건물과 부지, 교수진, 재정 등을 바탕으로 고려대학교가 4년제 대학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회장은 기성윤이었다. 고려대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는 정법대, 경상대, 문과대 등 3개 대학이 있었으나 현재 기준으로 보면 로스쿨, 경영대, 문과대, 정치경제대 등 3개 대학이 있다. 고려대학교는 한국전쟁 때 대구로 이전했다. 1952년 안암동으로 돌아와 수학, 화학, 생물학과, 농림학과를 신설하였다. 물론 1950년대까지는 이공계, 농업대학만 있었지만 토목, 건축, 기계공학 등 공학대학은 없었다. 한편 1960년에는 이승만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4·18 봉사활동에 학생 대부분이 참여하였다. 박정희 정부 수립 후 1964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일 수교를 반대했고, 고려대 총장을 15년간 역임한 현민우가 1967년 정계에 입문했다. 이와 함께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과 삼성그룹에 대한 동아일보가 맹공을 퍼부었다. 1971년, 그는 석대학교를 인수하고 새로운 의과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고려대는 박정희정부에 맞서 우석대 인수가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박정희가 신독재를 추진한 1972년 이후 고려대 학생들은 거의 극한까지 저항했다.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유신 정권에 항거하였다.김상협 고려대 총장은 성명을 통해 "학생 동요에는 이유가 있다"며 "모든 교수들이 한밤중에 모여 경찰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귀가한다"고 밝혔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은 김대중 납치사건에 항의하며 언론자유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동아일보의 반정부 발언 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지 전면 백지화를 압박하고 동아일보 사주들에게 언론인 해고를 강요했다. 당시 고려대 재학생들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긴장이 극심했다. 1975년 4월 박정희 정권의 군부가 고려대에 침입해 학생 소요를 진압했다. 그 결과 김상혜 고려대 총장은 이에 반발해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박정희 사후인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자 분위기가 바뀌었고, 현민 유진오는 국민자문위에, 남재-김상협은 국가안전보장위원회에 합류했다. 그러나 김준엽은 전두환 독재 정권에 저항함으로써 고대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한편 고려대학교도 정부의 서울 주요 대학 지원 요청에 따라 충청남도 연기군 도치원읍 서창리에 분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설립된 조치원 분교는 조치원 캠퍼스로 이름이 바뀌었고 2008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설립된 뒤 세종캠퍼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쨌든 1980년대 들어 전두환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수업과 시험에 대한 거부감은 고대 학생들에게 흔했다. 다만 김준엽 고려대 총장은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지 않도록 적극 보호했을 뿐 아니라 정부가 학생회 간부들을 추방해달라는 거듭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85년 2월 정부는 김준엽을 강제로 사임시켰다. 이후 김준엽이 사퇴하자 1985년 겨울 졸업식에서 수만 명의 학생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학생들은 반권위주의 민주화 투쟁의 주축이 됐다. 전두환 정권 말기에는 고등학생들이 학생 시위대를 너무 많이 차지했고, 고려대 이인영 총장이 제1차 전당대회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고려대 학생운동은 전두환 정부 말기부터 총장 직선제를 통해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활발해졌다. 1991년 의과대학이 그린란드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96년 아산과학관, 2000년 생명과학관이 완공되면서 이공계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편 2002년 3월 기존 운동장 부지에 지하주차장, 열람실, 각종 편의시설, 잔디공원 등을 갖춘 중앙광장이 준공되면서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차 없는 쾌적한 캠퍼스를 조성했다. 최근 서울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면서 안암역과 고다이역을 통해 등·하교할 수 있게 됐지만 학교 문화와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2003년 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유윤대 대통령의 개혁이 화제가 되었다. 학교 내 영어 강의 수가 4%에서 34%로 늘어나면서 세계 대학 순위는 급상승했다. 다만 학교 주인을 막걸리에서 와인으로 바꾸고 캠퍼스에 쇼핑몰을 도입하는 등 무리한 개혁이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어윤대 전 총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후 일부 학생들이 고려대와 성균관대를 합병하는 방안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2005년 교육부는 고려대와 고려대 보건대의 합병을 승인했고 고려대 보건대는 2006년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2006년 고려대학교는 서울캠퍼스에 4년제 대학을 설립하였다. 고려대학교 부속 보건대학교는 현재 부속 보건대학교의 적자로 인해 2011년까지 문을 닫았다. 2007년, 경영대학을 졸업한 이명박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동문들이 이명박 체제 하에서 총장 비호를 위해 힘을 모으면서 다른 대졸자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이명박의 공직 은퇴는 한동안 고위 공직에서 배제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2017년 3월 1일부터 학칙 개정으로 기존의 안암캠퍼스가 서울캠퍼스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실제로 학교에 가본적은 없고 지나가면서 봤다. 주변에 지인들중에 교려대를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연고대라고 하면 굉장히 싫어한다.